Based in Sydney, Australia, Foundry is a blog by Rebecca Thao. Her posts explore modern architecture through photos and quotes by influential architects, engineers, and artists.

0대 - 10대 시절

가족관계

딸 넷의 막내, 교사였다가 주부가 된 엄마, 해군장교였다가 무역사업가가 된 아빠, 할머니. 큰언니와 9살 차이이며 언니의 국민학교 일기장을 보면 내가 태어난 날에 딸이 태어났다고 슬퍼하는 가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음. 그러나 내가 아들로 태어났으면 나는 안하무인으로 크고 언니들은 고생하며 불화가 진행되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임. 아빠는 한계는 있으나 본인의 세대치고는 상당히 진보적, 서구적으로 딸들을 키움. 엄마는 상당히 착하고 순한 성격. 할머니는 고전적인 분으로 온가족이 독실한 기독교인. 당시 작은 동네 교회를 모두 함께 다녔으며 우리 네 자매가 그 교회 모든 장기자랑과 경진대회의 상당수 지분을 차지했음.

사람보다 글과 정보를 좋아함

엄마는 내가 4살때 글을 가르쳐 주심. 할머니 방에서 오래 지내며 옛날 얘기를 들으며 자람. 천자문을 배움. 글을 빨리 배운데다 암기력이 좋아서 영재 취급을 받음. 온 집안(친가에서는 내 세대? 항렬? 전체)의 막내인데다 주변 사람들과 나이차가 많아서 어릴 때 어른들, 특히 여자들에 둘러싸여 자람. 고로 뛰어놀고 쥐어박고 하는 신체적 놀이보다는 혼자 책을 보며 지냄. 당시 완소템은 금성사 백과사전과 온갖 동화 역사 과학 전집류, 성경책, 월간 보물섬. 또래 친구가 많지 않았음. 유치원을 1년 일찍 보내서 여섯살에 들어갔는데 당시에 아주 흔한 일은 아니던 듯. 아는 것은 많은데 몸집은 작다 보니, 무식하고(?) 힘센 아이들 틈에서 힘들어 했으며 여러 트러블 유발. 일곱살 때는 유치원 안다니고 피아노나 배우면서 다양한 독학으로 소일. 정보 = 강아지 > 사람 순으로 좋아함.

만화를 좋아함

해외출장과 사업으로 엄청 바쁘신 아빠 몰래 언니들과 집에 쌓아놓은 월간 보물섬을 아빠가 발견, 태우셔서 아까웠음. 순정만화를 특히 좋아해서 둘째언니와 함께 국민학교 입학 전/직후부터 만화방에 다님. 셋째언니는 범생이라 만화가게는 나쁜 곳이라 생각함. 6인가 7살때 "대나무 피리" 라는 만화책을 그려서 둘째 언니에게 선물을 주었으나 언니가 잃어버림. 내 기억엔 뒷심이 딸려서 후반은 그림 없이 글로 때웠던 것으로 기억함. 그래도 필생의 역작인 것 같은데 아쉬움. 월간 르네상스로 시작된 순정만화 붐을 즐겼음. 20대까지도 종로6가의 만화 도매상을 들락거렸으며 강경옥, 김혜린 등의 1980-2000년대 순정만화를 모으고 팬레터 등도 보냄. 순정만화 그리는 연습도 약간 함.

아버지의 사업으로 어릴때부터 서양사람들 보며 자람

미취학 아동때 호텔 식당 등에서 외국 중역들과의 미팅 시 분위기 메이커 아르바이트, 국민학교때는 수업 빼먹고 아빠가 시키시는 대로 김포공항에서 외국 기업가/시장 입국 환영꼬마 아르바이트(?)를 함. 영어로 전화받는 교육 받음, 국민학교 저학년때부터 집에서 또 LABO라는 단체를 통해 영어교육을 받음. 아빠는 40-50대 내내 일년의 삼분의 일 정도는 해외 출장을 다니심. 김포공항으로 아빠 배웅하러 밥먹듯 다님. 음향/영상 기기를 갖춰놓기 좋아하셨던 아빠의 영향으로 어릴때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과 라벨의 볼레로를 레이저디스크로 보거나 들음. 왬과 조지마이클을 좋아했던 언니가 미군 방송인 AFKN을 들으면 "I Want Your Sex" 라는 곡을 들을 수 있다고 해서 열심히 틀어놓기도 함 에헴. 중학교 2학년때 미국에서 살던 아이와 친구가 되어 뉴키즈온더블럭을 알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본격 팬/덕질/영어실력 부스팅이 됨. 당시 확보가 어려웠던 해외 정보나 물품을 구하는 방법을 알게 됨. 1992년 내한공연에 현장 암표로 입장한 후 해외스타 덕질, 소비자로서의 즐거움을 알게 됨. 중학교때 친구들과 뉴키즈 팬픽을 썼는데, 우리가 각 멤버와 맺어지는 설정이었으며 친구가 써준 내 부분은 서울대를 중퇴하고 하버드를 다니는 것으로 나옴. 훗날 현실이 비슷하게 흘러감 (실제 나는 서울대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갔으며 보스턴의 MIT에서 석사를 함). 시크릿인가?!

부뭐시기를 많이 함 

국민학교때는 부반장, 학생회 부회장 등을 했으며 남자아이가 회장이 되는 것을 보고 불만과 절망감을 느낌. 중학교는 여중이었고 학생회장을 함.

정치사회 인식 생김

국민학교 4-5학년때 9살 위의 언니가 소왈 386 세대로 대학에 진학한 후 언니의 운동권 세미나 교재를 발견함. 무신론, 막시즘, 당시 '광주사태'라 불리웠던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해 알게 됨. 홍대 신촌 근처에 살면서 데모 학생들을 자주 목격한 점, 당시 386이었던 다른 친척 언니 오빠들, 과외 선생님들의 영향으로 야학에 따라간다거나 오빠들 검문 통과를 도와주는 등(...) 당시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이었음. 교회 안가겠다고 했다가 아빠에게 혼난 후, 강제로 출석은 하지만 예배시 멍을 때리거나 다른 책을 보는 등의 수동적 저항을 30년 가까이 함 (교회로부터의 해방은 훗날 2017년, 만 40세가 되어서야 이룸). 국민학교 선생님의 강매로 시사저널을 구독하게 됨. 신문도 열심히 보는 편이었으나 시사저널은 워낙 보수 일간지에 비해 관점이 달랐음. 1989-90년 분신정국 당시 샛노란 색에 "분신…" 이라는 단 한마디가 적혀있는 강렬한 비주얼의 표지를 보고 충격을 먹어서 시각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함. 그 전까지는 장래희망이 뭐야 라고 하면 언론인이라고 했었으나, 이때부터 타임지의 아트디렉터라고 말함. 원래는 순정만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나의 우수한 성적과 당시 박해받는 만화에 대한 사회 인식을 볼 때 설득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지, 드라마 등에서 한참 띄워주던 디자인 계열로 혼자 합의를 본 것 같음. 예고를 가겠다고 선언, 중2때부터 입시미술 공부.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진학.  

운좋아서 쭉 공부 잘한 케이스

국민학교 입학시 성적이 좋았으며 대학교 입학까지 스트레이트 상위권 유지. 각종 장학금을 받을 때면 부모님의 같은 액수로 매칭을 해서 통장에 저금해 주심. 부모님은 학군 등에 전혀 관심이 없고 당신들이 중시하는 교회와 공동체가 있는 마포구에서 계속 사셨는데, 당신들의 삶에 우선 순위를 두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나로서는 편했고 지금도 탁월했다고 봄. 부모님의 극성은 없었음. 내가 진학하고 싶은 학교(서울예고, 서울대)를 정하면 지원해 주시고, 내가 성적이 좋아서 친구들이 같이 과외를 하자고 선생님을 찾아오면 부모님은 돈을 주시는 식이었음. 부모님이 어쩌다 제안하시는 과외도 내 성적 때문에 유명한 선생님을 붙이는 식이 아니라, 부모님의 강원도 고향 후배들 중 성적이 우수한 장학생들에게 학비를 보태주기 위해 과외 선생님으로 갑자기 데려오시는 경우가 더 많았음. 나는 그 대학생 오빠들과 친하게 지내며 고학하는 지방출신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약간 알게 됨. 서울대학교에 가장 많이 진학시킨다는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평균성적이 가장 높은 미술과 수석졸업. 서울대 입학시 성적우수로 첫학기 장학금 면제. 당시 수능은 전국등수를 따지는 정도였고 공부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이 있었음. 서울대 입시 본고사 종목 중 제2외국어를 한두달 전에 한문에서 불어로 바꾸었는데 이유는 그냥 둘 다 잘하고 싶어서 (급하게 불어로 바꿔 준비해야 하면 집중해서 배울테니 결국 둘 다 잘 하게 될 것) 라고 할 정도로 자신감이 있었음. 고등학교때 조기유학 붐이 불면서 해외파인 아빠가 나를 해외에 있는 국제고등학교로 편입시킬 생각을 했으나 국내파인 엄마가 전교 1등하고 서울대 갈 수 있는 성적이 아깝다며 반대함. 서울대가 뭐라고.

부유함

국민학교 입학 전에는 생선 한마리를 일곱 식구가 먹어야 한다든가, 몸집이 작은 나는 밥상에서 단백질 확보에 느려서 엄마가 생선 눈알을 나에게 주시는 등 집에 먹을것이 모자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으나, 이후 가정의 경제력이 점진적으로 올라감. 국민학교 중학교 친구들 집에 갈 때마다 우리집이 동네에서 부유한 편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고 겉모습이나 언행에서 부유한 티가 나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함. 그러다 서울예고에 진학한 순간 부유층 자제들 틈에서 또 다른 문화충격을 받음. 자수성가하신 부모님이 장학생들을 후원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백혈병에 걸린 고향 후배를 물심양면으로 도우시는 모습 등을 어릴 때 부터 보며, 부는 잠시 맡겨진 것이며 그게 하나님이건 무엇이건 모종의 기준에 합당한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기독교적 청지기론의 영향을 받음.

주택 생활

아파트나 빌라 등에 살아본 적이 없이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자람. (한국에서 아파트나 빌라 경험은 아직도 없으며 결국 얼마전 한옥 주택 구입함)

20 - 30대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