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d in Sydney, Australia, Foundry is a blog by Rebecca Thao. Her posts explore modern architecture through photos and quotes by influential architects, engineers, and artists.

20 - 30대 시절

미국 유학

해야 할 것이 언제나 분명했고 그것을 성취하며 죽 뻗어왔던 과거와 달리,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진학 후 해야 할 것의 불분명함과 그다지 좋지 않았던 교육환경의 질에 혼란과 실망을 겪음. 유학을 다녀온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내용이 상대적으로 좋았으나, 본무대가 아닌 변방에서 한다리 건너 배우는 환경에 불만족함. 전공과 관계없이 고시 준비를 하는 순응적인 서울대생들의 모습에 공포를 느낌. 입학하자마자 과대 역할 등을 했으나 신입생 대면식에서 알콜 포이즈닝으로 중환자실에 실려가는 등 관악에서의 라이프스타일과 건강도 좋지 않았음. 학업 동기가 불분명했고 성적도 별로였음. 컬럼비아와 예일대 등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과정중이었던 언니들을 보며 나는 오히려 학부 때 부터 미국에 가서 더 현지화 되고 싶다고 생각함. 대학교 1학년때 유럽 배낭여행, 2학년때는 예일대로 영어 연수를 다녀온 후 나도 외국에서 생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함. 2학년 2학기 중 서울대를 휴학하고 8장짜리 진로 제안서를 부모님께 제출하며 유학 선언함. 이 과정에서 뉴키즈온더블락 팬질로 갈고닦은 정보수집력과 영어력이 빛을 발함. 당시 피씨통신과 넷스케이프(...)를 활용하여 미국 대학의 카달로그를 수집하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여 미국의 5개 학교에 인터뷰를 감. 아버지가 함께 오셔서 뉴욕-시카고-피츠버그 순례를 해주심. 영어에 유창한 아버지의 테스트를 거침. 그 중 종합대학이며 디지털 시대에 맞춰 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이라는 새로운 복수전공을 제공하며, 중소도시적인 겸손함(+ 덜비싼 생활비)을 갖춘 카네기 멜론으로 편입 결정함. 당시에 워낙 인지도가 없는 학교였기 때문에 나름 도박이었음. 게다가 IMF로 1달러가 2000원이었던 직후에 유학을 가서 학비로 돈을 많이 썼음. 2학년으로 편입하여 시각디자인, HCI 복수전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부 졸업. 당시 웹,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 닷컴 신생 업계의 등장으로 잘나가는 전공이 되… 었으나 졸업 직전 2000년 닷컴 붕괴로 미국내 취업전선에 먹구름. 졸업을 미루고 뉴욕에서 옷가게 알바를 하며 버티는 우여곡절 끝에 LG전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에 합격하고 취업비자를 대준 마소 본부가 있는 시애틀로 이사감. 학부 중 성적은 우수했으나 언어와 문화 등 여러 핸디캡으로 그 전에는 외향형이었던 성격이 급속하게 내향적으로 바뀌어 시애틀에서 회사의 빠방한 의료 보험이 생긴 후 잠시 심리 상담의 도움을 받음. 그래도 창의적이면서 돈 잘버는 전공으로 취업해서 장래가 나쁘지 않았음. 학부 3학년 때 텍사스 오스틴에서 인턴쉽을 하러 가면서 30시간 편도 거리 운전을 해서 다녀왔으며, 부모님께서 오스틴까지 오셔서 함께 휴스턴 나사 관광을 가는 등 나름 효도했다고도 생각함. 취업 당시 우리과 졸업생들 중 비자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나의 초봉이 가장 높았음.

디자인 전문가로서의 생활과 커리어

시애틀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오피스 2003, 2007 제품디자인. 회사 동료들과도 친하고 인기도 좋았으며 경제적으로도 Yuppie 의 삶을 구사하면서 즐겁게 보냄. 디자인 전공자로서는 넉넉한 경제력으로 펀드와 주식 투자도 열심히 했으며 글로벌 소프트웨어 IT 회사의 우수 인재들과 업무 뿐 아니라 파티 클러빙 등으로 즐거운 생활을 한 편. 그때부터 집을 골랐다 하면 게이 + 힙스터 동네에 살게 되는 패턴이 형성되었으며, 기존 서비스 보다는 세상에 없던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강하다는 평을 듣게 됨. 다양한 외국인들과 사귀어 봄. 그러나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디자인 직종 지위, 영향력, 디자인 품질 등에 대해 불만족이 생기고 디자인팀의 인사문제등으로 회사에 불만을 가지게 됨. 애플, IDEO 등 디자인으로 지존이라 알려진 회사들에 인터뷰를 보기 시작하고 IDEO로 이직,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 IDEO에서 인터랙션 디자이너/컨설턴트/영업을 아우르는 역할을 하며 외국 고객 프로젝트 뿐 아니라 SKT, NHN 등 한국 대기업 프로젝트도 하고 한국에 비지니스클래스를 타고 출장을 다니기 시작. 훗날 넥슨 USA CEO가 되는 유능한 사수, 한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중년의 노련한 미국 여성 선배들 밑에서 일을 배우며 과로로 보답함. 응급실 가즈아.

대학원 진학과 영역 확대

만 30세가 되어 보니 남의 컨설팅은 해주는데, 내가 뭐 하는 사람이라는 아젠다가 없다는 것을 깨달음. 마침 언니들 셋이 모두 아이를 키우며 박사과정을 하는데 헬게이트가 열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내 브랜드나 아젠다를 만들려면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함. 그때 마침 IDEO의 내 사수와 매니저가 모두 이직을 해버림. 스크린 상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인터랙션 디자인 뿐 아니라 좀 더 신기술을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웨어러블이나 제스추어 인터페이스 쪽을 배우고 싶어 회사를 사직함. 생전 해본 적이 없는 회로 센서 등을 공부하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MIT의 Media Lab에 석사과정으로 입학함. 즐겁게 웨어러블 쪽 연구 작업했으나 아쉽게도 그 분야의 유명 인사인 지도교수의 사랑을 그다지 받지 못함. 또한 나만 보스턴으로 가있고 샌프란에서 스타트업을 하고 있던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음. 와중에 MIT/하버드 유학생들 몇몇과 한국 컨텐츠 진흥원과 기업의 후원을 받아 MIT 미디어 랩 해커쏜 및 컨퍼런스 행사를 조직하면서 엉뚱한 업무력을 발휘함. 막판에 교수님과 급 사이가 좋아 졌으나 박사 지원을 하지 않고 석사 학위로 마무리 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옴. 핫한 분야를 연구하였으므로 애플, 페이스북 등 여러 회사에 취업 시도가 가능했으나 잠시 남편과 휴식 시간을 가지기로 함.

배우자와의 협업과 여행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때 만난 남편은 3살 연상의 미국사람으로 Machine Learning으로 박사학위를 딴 컴퓨터공학자. IDEO 취업으로 샌프란으로 내가 이사를 온 후 1년정도 월말부부였고 남편은 마소를 관둔 후 샌프란에 와서 스타트업을 시작함. 2년간 내가 보스턴으로 가있겠다고 해서 이혼당할 뻔 했는데, 부부상담 등으로 유야무야 넘어감. 서로 분야가 약간 관련은 있으나 한동안은 직접적으로 같이 일을 할 일이 없었지만 가끔 나는 남편의 연구 프로젝트나 스타트업에 동원되어 일하고 내가 필요한 프로그래밍이나 논문 작업에 남편이 도움을 주는 편이었음. 처음 만났을 때의 남편은 너드 아재였지만 나랑 다니면서 그래도 좀 많이 젊어졌다. 나의 석사 졸업과 동시에 남편의 스타트업이 매각되면서 간만에 둘의 타이밍이 맞는 기적이 도래함. 1년 정도 세계 여행을 다니자! 하고 출발, 남미-동남아에 6개월 머무르다 보니 스타트업 아이템이 생각남(...). 한국에 4년간 주로 머무르며 개발팀을 채용하고 트레이닝하여 2014년 미국에서 핀테크 서비스를 런칭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매출 등의 유의미한 지표를 미처 키워내지 못하고 사업을 접기로 함. 공동 창업자로 일을 하다 보니 여러모로 배우자와의 관계에 어려움도 있었고, 갑자기 환경이 바뀐 한국생활도 남편과 나에게 아주 즐겁지는 않았음. 한국에서는 난임 시술을 여러번 받았으나 실패하기도 함. 2016년에 스타트업을 접고 이후 각자 실리콘 밸리의 미국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시스템 개발과 디자인 컨설팅을 하고 있음.

사회 참여

미국에서 이민자/외국인노동자로서 발현되지 못하고 있던 나의 시민의식이 한국에 있다보니 살아남. 특히 세월호 등 박근혜 정부 중에 일어난 일들과 한국의 성평등 성폭력 문화에 영향을 받음. 세월호 사고 직후, 한국의 IT 스타트업계 지인들과 함께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조속한 구조/특별법 활동을 촉구하는 <응답하라 국회의원> 이라는 사이트를 런칭하여 화제가 됨 (EBS, TV조선, 세바시 등에 소개, 경향신문인가에 나의 인용구도 나옴). 또한 <디자인 말하기> 라는 팟캐스트의 정규 멤버로 참여하여 3년여간 익명 상담소를 운영함. 한동안 예술 분야 수위를 다투었음. 최근에는 스타트업계의 여성들을 조명하는 인터뷰 프로젝트 <고민 상담소>를 제작하였고 아직 런칭하지 않음. 미국에서도 총기 사고에 항의하는 의미로, 총기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펀드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굿바이 건 스탁>이라는 웹사이트를 런칭했으며 포브스, 패스트 컴퍼니 등의 언론에 보도됨. 최근 플로리다 총격 사건으로 다시 약간의 주목을 받고 있음.

K-Pop, 댄스와 즉흥 코미디 덕질 

미국 유학을 갔을 때도 VH1 등의 대중음악 채널과 Science Fiction 장르를 파서 단기간에 그쪽의 대중문화를 익혔는데, 한국에 왔을 때도 엠넷 등을 집중 시청하며 대중문화를 익힘. 그결과 WINNER, BTS, 2NE1등 케이팝 그룹들을 가볍게 덕질하게 되었으며, 케이팝 아이돌 분야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덕후 문화를 좀 알게 됨. 서비스를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팬덤" 과 "호감"은 중요 요소라고 생각하여 눈여겨 보는 중. 딱히 운동을 좋아하지 않지만 30대 후반의 나이에 댄스 학원도 다녀서 얼반, 스트릿, 힙합 수업을 듣고 홍대 앞에서 두 번 공연함. 이때 나보다 스무살 가량까지 젊은 친구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기량을 연습으로 메꾸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됨. 비슷하게 내 멘탈에 도움이 되고 즐거움을 준 것은 즉흥 코미디임. 사업, 임신 실패와 한국 친정 부모님의 어려움에 영향을 받아 지난 2년간 경도의 우울을 겪고 있었는데, 최근 Improvisational Comedy (줄여서 Improv, 임프라브 라고 부름, 미국에서 인기 있는 장르로 SNL 코미디언들의 등용문, 미국에서 배웠었음) 를 다시 배우기 시작함. 마침 한국에서 건너건너 알고 있던 IT쪽 종사자들이 유일한 한국어  극단을 꾸리고 있는 데 참여함.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멘탈이 부서지는 길거리 공연을 하였고 2018년 3월에 싱가폴 국제 페스티벌에서 공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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